수상자 명단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당신!
석류장
석류장
이상기
대표
나눔자리문화공동체
넉넉하고 맛깔스러운 손맛을 자랑하는 이상기 씨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그녀의 작은 부엌 앞에 몰래 놓고 간 감자며 호박이며 두부, 콩나물 같은 식재료들을 다듬어 40인분의 반찬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내는 반찬은 취약계층가정에 전달된다. 지금까지 216,000가정에 일 년 300일을 18년째 이어오고 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매일 반찬을 만들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에게는 후원자가 많다. 고맙게도 시장이나 슈퍼마켓 혹은 농가에서 식재료를 지원해준다. 또 그녀를 도와 반찬을 만들고 전달하는 봉사자들이 있다. 혼자였다면 분명 힘이 들었을 일이지만, 그녀와 함께 걸어가는 동행에는 사랑이 넘쳐난다. 다양하고도 광범위한 그녀의 활동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지역사회의 복지증진을 위한 일이었다. 그래서 청소년을 위한 교육사업도, 사회복지시설과 정기적인 교류를 하는 일도, 홀로어르신들과 어버이 결연을 맺는 일도 그만둘 수 없다. 그녀는 매일 반찬을 전달하면서 안부를 묻고 필요물품이 없는지 챙기고 청소와 이불빨래까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복지관과 급식소가 문을 닫으면서 이 활동은 더욱 가치 있는 일이 되었다. 사랑하고 나누는 일이 달콤하다고 말하는 그녀는 오늘도 그 넉넉한 손으로 도시락 가득하게 반찬을 담는다.
석류장
이유근
원장
아라요양병원
‘나의 삶과 나의 의술을 순수하고 경건하게 유지할 것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일생 지키며 살고 있는 이유근 씨에게는 직함이 많다. 아라요양병원 원장을 포함해 7개나 된다. 그만큼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뜻이겠다. 직함의 면면을 살펴보면 부와 명예를 위한 일이기보다는 제주시민을 위한 일임을 알게 된다. 그의 봉사는 시작부터 남달랐다. 1959년 까까머리 고등학교 시절부터 도서실 봉사를 했다는 그는 졸업식에서 공로표창을 받았다. 이후 그가 쌓아올린 봉사시간이 62년이라고 하니 일생 봉사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지역사회를 복지공동체로 만드는 일은 그의 큰 꿈이었다. 2000년 제주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가 결성되고 초대회장을 맡은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보육원과 소년소녀가장 돕기, 한센복지협회, 새생명후원회, 외국인근로자 무료진료소개원 등에 적극 동참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애인관광도우미사업, 취약계층 주거환경개선사업, 우리 바다 살리기 운동, 휴먼르네상스아카데미 등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을 정도다. 모두 지역민을 위한 복지문화 사업이었다. 그는 제주의 풀뿌리 민간자원봉사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안녕한 사회를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그 토대를 다지는 일에 일생을 헌신한 사람이었다. 열정은 멈추지 않아서, 앞장서고 있는 여러 활동에 여전히 동참자이며 든든한 지원자인 그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국민포장
국민포장
김덕애
고문
원불교부산울산봉공회
분홍 조끼를 곱게 입은 그녀는 사랑스러운 미소를 가졌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웃음에는 경계가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있다면 하던 일 제쳐두고 마중 나간다. 지난 35년 동안 원불교부산봉공회 회원으로서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몸을 움직였다. 우리는 각자 주어진 시간 속에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데, 그녀의 인생행로에는 자원봉사라는 아름다운 동행이 있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은혜로운 덕애 씨다. 그녀는 이웃과 함께한 자원봉사 10,000시간의 헌신으로 부산시 자원봉사자의 날에 자원봉사명예장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가장 환한 미소가 지어질 때는 나누미가 될 때다. 은혜의 쌀을 복지시설 마당에 가득 쌓아 올릴 때, 은혜의 김장을 홀로어르신 댁의 냉장고에 넣고 돌아갈 때, 은혜의 연탄을 창고 가득 채우고 돌아설 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듯하다고 말한다. 늘 소외된 이들을 위해 몸을 움직였던 은혜로운 덕애 씨, 그녀의 미소가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그 행복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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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구
회장
샘터뭉침회
집에만 갇혀 지내던 장애인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사람이 있다. 샘터뭉침회 회장 김정구 씨다. 장애인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1980년, 2급 지체장애인이었던 그는 교양지 샘터에 회원 모집공고를 냈다. 그것은 그들의 권익을 스스로 찾자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길거리에서 일반인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편견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던 시절이었으니 사회활동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들의 인권은 논의대상이 되지 않았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가 장애인 인권운동에 나선 이유는 청소년 시절에 겪었던 좌절 때문이었다. 장애인 인권운동은 궁극적으로는 행복추구를 위한 일일 것이다. 그는 장애인들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바란다. 그동안 상담과 친구 맺기를 통해 150여 명이 짝을 찾았다. 그들이 잘 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니 그는 장애인들의 진정한 아버지임에 틀림없다. 그는 40년 전에 장애인단체를 창단해 오늘날 장애인복지의 초석을 놓았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장애인 복지와 인권향상을 위해 변함없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에게 찬탄의 박수를 보낸다. 그가 발행하는 회보 ‘어둠 속에 빛’ 12월호에 어떠한 사연과 활동이 담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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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정
단장
대전마술상록봉사단
자원봉사는 자신이 가진 재능과 시간과 물질을 상대에게 나누어야 하는 고정 지출이라고 여기는 고희정 씨. 그러니 여유로울 때 하는 일이 아니라 밥을 먹듯이 직장을 다니듯이 일상생활처럼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봉사정신은 지역사회로부터 귀감이 되어 자원봉사 벤치마킹의 사례가 되었다. 그가 일상생활처럼 하는 일은 아동과 취약계층의 복지에 관한 일이다. 현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인연을 맺고 후원하는 어린이가 국내와 해외를 포함해 7명이나 된다. 자애로운 아버지의 애정 어린 보살핌을 받은 아이들은 세상에 희망을 주는 청소년으로 커가고 있다. 그가 어린이재단 행사에 참여해 모금 활동으로 연결시킨 후원자가 112명에 이른다. 사랑의 징검다리, 사랑나눔 큰잔치, 연말 빈곤가정 돕기의 초청행사를 열어 후원자들이 또 동참하게 되는 배가활동으로 범위를 키워나갔던 것이다. 자전거는 두 바퀴가 함께 굴러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다. 지구상에는 여러 종류의 계층이 존재한다. 계층 간의 화합이 없으면 평화도 없다. 그가 소외된 사람들에게로 자꾸 손길을 보내는 것은 소통과 화합을 위한 움직임이었다. 그는 오늘 자전거를 타고 안전한바퀴 캠페인에 나섰다. 지역 전통시장과 대전천을 돌며 위험요인을 점검하고 행정안전부 안전신문고 앱에 실시간으로 신고하는 활동이다. 지역사회의 안전을 위해 발로 뛰는 그의 노고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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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
회장
늘보람봉사단
김미화 씨의 하루는 일과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1991년 새마을 부녀회장이 되면서부터 일상이 되었다. 그동안 몸담았던 단체가 7개이니 아침에 일어나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즐길 수 없었을 듯하다. 그녀가 서산을 대표하는 자원봉사활동가가 된 것은 타고난 부지런함 때문이었다. 그것에 더해 성격 좋고 재주까지 갖추었으니 이곳저곳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그녀가 쉬지 않고 봉사를 하는 이유는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못하는 선하디선한 마음씨 때문이다. 여성운동을 할 때 그녀의 얼굴은 더욱 빛난다. 서산시 각종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여성들이 위원으로 위촉될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 도왔다. 그것은 여성의 지위향상과 양성평등문화 확산을 위한 일이었다. 대한민국의 어머니는 눈으로만 보지 않고 가슴으로도 본다고 한다. 한이 많은 나라의 여성들이라 눈물도 많아 가슴 아픈 사연을 들으면 내 사연이 되어 같이 울기도 한다. 그녀에게도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2005년 늘보람봉사단에 가입해 여성자원활동가로 활동하던 중에 귀한 아들을 백혈병으로 하늘나라로 보냈다. 슬픔으로 일어설 수도 없을 때 그녀의 옆에는 언제나 자원봉사활동가들이 있었다. 그녀가 이루어낸 자원봉사활동의 원동력은 그들에게서 받은 사랑이었다고 말한다. 하루하루를 허투루 살 수 없었다. 그러니 늘 보람찬 하루가 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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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자원봉사자
김해시종합사회복지관자원봉사회
밥에도 철학이 있다. 쌀(禾)이 입(口)에 고르게(平平) 들어가는 것이 평화(平和)라고 했으니 예부터 성군은 공평한 정치를 펼친 위정자를 일컬었다. 불교에서는 하루 세끼 먹는 일을 공양이라고 하는데, “공양하셨습니까?”라는 인사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진지 드셨습니까? 식사했어요? 밥은 먹고 다니니? 이러한 말 속에는 밤새 안녕하신지, 건강은 좋으신지, 형편은 괜찮은지 등의 뜻이 숨어있다. 참으로 무게가 느껴지는 인사말들이다. 밥은 기본 생존을 위한 것이라 등한시할 수 없는 문제다. 김은숙 씨는 밥 한 그릇의 사랑을 나누고 있는 대표적인 분이다. 그 한 그릇의 밥은 그저 배고픔을 해소해주는 한 끼의 식사로 그치지 않았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임종 전 하시는 이 말씀이 12년 동안 호스피스 활동을 지속한 원동력이었다고 한다. 2008년 호스피스자원봉사자 모집공고를 보고 호스피스전문교육을 받았다는 그녀. 자격을 취득하고 그해 5월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해 12년이 흘렀다. 그녀는 말기 암과 중증환자들의 목욕을 시켜드린다. 통증완화 케어를 하고 발마사지를 하며 정서적으로 위로하고 편안한 임종을 맞도록 보살핀다. 생신잔치를 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환자와 가족의 심리적인 고통을 완화시키는 일에 정성을 다한다. 힘들 때가 왜 없었을까. 죽음과 이별이라는 정신적으로 힘든 봉사를 반복하고 있지만, 편안한 모습으로 임종을 맞는 환자와 그 가족들을 보면 사명감으로 놓을 수가 없다고 한다. 생존과 죽음을 보살피는 김은숙 씨의 활동이야말로 아름다운 완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선한 활동은 자원봉사역사에 오래도록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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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미자
회장
사랑나눔회
명미자 씨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가마솥 앞에서 커다란 조리용 삽으로 닭볶음탕을 뒤집고 있다. 그녀의 조리복은 땀과 수증기로 젖은 지 오래다. 사람에게 먹는 일보다 급한 일이 있을까. 이 시간에도 혼자 집을 지키며 한 끼를 해결할 도시락과 봉사자가 오기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그녀는 잠시도 쉴 수가 없다. 자신의 키로는 버겁기만 한 조리도구를 들고 솥 앞에서 음식을 하다보면 두 팔이 저리고 마비가 될 것만 같다. 공주교도소 교화위원으로 시작하여 25년10개월을 봉사에 앞장서고 있는 그녀는 프로봉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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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록
단원
이천시자원봉사센터 호스피스봉사단
82세의 박상록 씨는 24년을 평단원으로 봉사해 왔다. 이천의 자랑인 세계도자기 엑스포를 시작으로 여러 지역축제와 문화체육행사를 지원해 온 그녀는 겉으로는 평범한 할머니로 보일 뿐이다. 나이로만 보면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기보다 봉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없이 오늘도 봉사를 하기 위해 재촉하는 발걸음에 에너지가 충만하다. 살기 좋은 세상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들 각자가 올곧은 마음을 가지고 행동할 때 우리 사회는 명랑해진다. 그런 생각에서 2001년에는 바르게살기운동 일환으로 양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인식개선 활동에 참여했다. 할머니가 뭘 아세요, 여자가 왜 그래, 같이 습관적으로 내뱉는 편견에 찬 말은 세상을 가르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른다. 습관화된 말은 우리의 생각이 되고 행동이 된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녀는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많은 활동 가운데 꾸준히 하는 활동은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일이다. 무료급식소를 지원하고 김장나눔 봉사를 하는 일, 저장 강박 장애가 있어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거주하는 대상자들의 환경을 개선하는 활동 등이 그것이다. 오늘도 박상록 씨는 감성 충만, 에너지 충만한 모습으로 노란 조끼를 입고 이웃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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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계
단원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황금2동 봉사회
봉사단원들 사이에서 ‘나이팅게일’이라 불릴 만큼 헌신적인 희생과 봉사의 대명사가 된 백인계 씨는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읜 뒤,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하고 싶어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초등학교 양호 교사로 12년을 근무한 그녀는 경력을 살려 청곡복지관과 황금복지관에 있는 어르신 30여 분 댁을 한 달에 네 번 정기적으로 방문해 혈압 및 맥박, 혈당 등을 체크하고 1:1 맞춤 건강 상담을 진행하였다. 2020년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대구지역의 적십자봉사회 리더로서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지역거점 병원인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 300여 명을 위한 식사와 간식을 지원하고 전국에서 보내준 응원 물품을 배분했다. 전국에서 달려온 119구급대원들이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보고 그냥 있을 수가 없던 그녀는 적십자 이동 급식 차량을 이용해 끼니마다 따뜻한 밥과 국, 반찬을 만들어 제공하는 등 헌신하는 소방관들을 응원하였다. 자두 재배 농가에서 일손이 부족할 때도 망설이지 않고 달려가 자두 수확을 지원하였다. 여전히 팬데믹 현상을 이어가고 있는 지금 다중이용 시설 등을 방문하여 자가 격리 중인 지역 주민들이 격리 기간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구호물품을 제작하고 감염에 취약한 노인과 아동 세대에 감염예방 물품과 구호품을 전달하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의료적으로 코로나 백신은 아직 개발 중이지만 코로나를 극복하려는 사회적 백신은 이미 우리 곁에 있는 것이 아닐까. 수많은 백인계 씨들이 따뜻하고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이웃과 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한 코로나19가 사멸할 날도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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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익
회장
환경문화시민연대 제주도협의회
제주특별자치도에 사는 손재익 씨는 1973년,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 되는 해부터 봉사를 시작했다. 제주 희망원 노인 생활시설의 어르신을 대상으로 식자재를 지원하고 목욕 봉사와 장례절차까지 젊은 청년으로는 실천하기 어려운 활동을 10년간 해 왔다. 다음 해인 1974년부터 지금까지 제주도는 물론 전국의 요양원과 경로당, 노인복지관의 어르신들을 찾아간다.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술인과 함께 방문해 어르신들 앞에서 노래와 춤을 공연한다.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물론 요즘에는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까지 한다. 전화를 통한 다양한 사기 수법에 어르신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모든 활동은 자신과 이웃이 둘이 아니며 끊을 수 없는 공동운명체라는 생각에서 한 일이다. 명절에는 3~4명의 어르신을 집에 모시고 와 부모님을 섬기듯 정성을 다했다. 도내에는 물론 바다 건너 정읍, 안동 등 다른 지역에 계신 노인복지관의 어르신들께 귤을 보낸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한 해 한 해가 바뀌어 갈수록 우리의 삶이 각박해진다고 하지만, 묵묵히 48년이라는 시간을 이웃과 우리 사회를 위해 살아온 손재익 씨에게 세상은 쌉쌀하지만 살맛나는 꽃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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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점옥
자원봉사자
부산광역시 영도구자원봉사센터

부산시 영도구에 사는 오점옥 씨는 44년 동안 자원봉사를 해 왔다. 1975년 혼자 폐품을 모아 판매한 수익금을 ‘한센인자녀 아동시설’에 후원하면서 시작한 봉사는 소외계층의 장례식 ‘염습’봉사까지 이어졌다. ‘염습’이란 고인이 된 이를 깨끗이 씻기고 수의를 입히는 일이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생을 마감한 이후에도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절차가 있어 마무리가 간단하지만은 않다. 그렇기에 가진 것이 넉넉지 않았던 사람은 죽음 이후에 더욱 쓸쓸하다. 오점옥 씨는 생전에 마음을 나누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생의 마지막 길을 평안하게 보낼 수 있게 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남들은 쉽게 하지 못하는 염습 봉사를 무려 44년째 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로 전 세계는 암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그 여파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할 수도 음식을 나누기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려운 환경에 처한 분들에게는 여전히 따뜻한 밥과 국, 반찬이 들어있는 도시락이 필요하다. 거리에서 생활해야 하는 노숙인들에게도 가장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음식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산복도로가 많은 부산 동구 일대 대상자 가정을 걸어서 방문하여 조리한 음식을 전달하고 전날 전했던 도시락을 수거하면서 안부를 확인하고 말벗까지 하는 오점옥 씨의 헌신적인 활동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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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문태
자원봉사자
부산광역시 금정구자원봉사센터
“열공하며 봉사하며 업그레이드”는 옥문태 씨의 봉사 슬로건이다. 봉사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앞선 생각을 그는 언제부터 하게 되었을까. 그에게는 공부하면 정체되지 않고 새로운 환경과 시대에 맞춤하는 봉사를 실천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다. 1975년 비가 많이 와서 주변 공장지대가 침수되었다. 그곳은 상습침수 지역으로서 해마다 같은 일을 겪었다. 비가 그치고 물에 젖어 못 쓰게 된 전자제품 수리 봉사를 하면서 그는 자신의 일손을 필요로 하는 곳이 또 있을 거란 생각에 어떤 봉사를 할까 연구했다. 당시만 해도 거리 곳곳에 동전을 넣고 통화하는 공중전화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문제를 발견했다.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으면 남은 돈이 있었다. 하지만 이 돈은 다시 찾을 수 없는 낙전이었다. 허공에 떠 버린 돈, 곧 낭비되는 돈이었다. 그는 공중전화 낙전(落錢)을 줄이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부산구치소에서 수형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운동장에 운동시설을 기증한 일도 있다. 대개의 사람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 무슨 복지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범죄가 또 다른 범죄를 낳지 않게 하려면 울타리를 벗어났던 사람들이 다시 울타리 안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세상이 자신들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세상에서 사라지거나 잊힌 존재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을 때 그들이 온전하게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믿었다. 45년은 한 사람이 태어나 중년이 되기까지의 시간이다. 옥문태 씨의 변함없는 자원봉사 활동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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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외조
자원봉사자
경남 창원시자원봉사센터
1986년부터 자원봉사에 첫발을 디뎌 34년 동안 활동하고 있는 유외조 씨는 적십자사 봉사 활동을 계기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 왔다. 현재까지 1365 자원봉사 포털시스템 누적 봉사 활동 전국 최다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유외조 씨는 한 달 중 일요일을 빼고는 거의 매일, 하루 6시간씩 봉사하고 있다. 장애인 가정과 복지관을 방문하면서 용돈을 아껴 생필품을 전달하고 병원을 모시고 다니며 그분들의 집안일까지도 한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분 가운데 혼자 살던 어른이 100세로 임종하기까지 가족처럼 돌봤던 일은 주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낫다는 말처럼 통·반장으로 활동하며 이웃사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실천한 그녀 덕분에 돌볼 가족 하나 없는 어르신이 100세까지 함께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두운 밤을 밝히려면 등불이 있어야 한다. 크고 작은 등불이 모일 때 암흑과도 같은 어둠이 물러갈 수 있다. 지금까지 34년이라는 시간을 때로는 작은 불씨로, 때로는 크고 환한 등불이 되어 활동해 온 유외조 씨에게 상을 주는 것은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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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남식
회장
마포구여성단체연합회
시작은 32년 전 부녀회장직을 맡으면서부터였다.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보탬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새마을부녀회장 자리는 그녀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원래 베풀기를 좋아하는 성품에 사명감과 책임감이 주어지자 그녀의 봉사를 향한 열정은 깊어만 갔다. 잔잔한 미소와 도자기처럼 맑은 피부를 가진 윤남식 씨, 그녀의 아담한 체구 그 어느 곳에서 이토록 큰 배포의 아량이 나오는 걸까. 세월이 가도 식을 것 같지 않은 그녀의 봉사를 향한 열정에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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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자
회장
문주란봉사회
50여 년 전, 첫 아이를 낳기도 전인 새댁 시절부터 그녀는 봉사와 인연을 맺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살기 어려웠던 70년대에 폐품을 수집하고 바자회를 열어 얻은 수익금으로 소년소녀가장과 불우이웃을 도왔다. 신혼살림에 그녀라고 넉넉할 리 없었겠지만, 이금자 씨는 자신보다 더 힘든 주변으로 향하는 마음을 멈출 수 없었다. 젊은 시절 한 가정의 어머니에서 소년소녀가장의 어머니로, 여성 농업인과 장애인들의 어머니로 살아온 이금자 씨,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람을 향한 모성애로 가득차 있다. 세상 그 무엇이 어머니보다 아름답고 강할 것인가. 그래서일까.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도 그녀는 단단하고 눈부시게 빛난다. 모두의 ‘어머니’ 이금자 씨의 사랑이 향하게 될 다음 대상은 누구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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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락
회장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 안동영남봉사회
1978년에 일어난 대형 교통사고는 이서락 씨의 삶을 뒤흔들었다. 신체의 14군데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그는 죽음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1년 가까운 시간을 수술과 재활에 집중하면서 그는 다시 일어났고, 제 2의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만 시간의 법칙’이 말해주듯 어느 한 분야에 공들인 시간이 만 시간을 넘어서면 누구든 그 방면에 전문가가 된다. 하물며 4만 시간을 봉사에만 헌신한 그는 진정 자원봉사의 전문가라 할 수 있다. 훤칠한 키에 다정하게 웃는 모습 너머 누구도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프로 봉사자의 위엄이 느껴진다.
대통령표창
이순자
단장
천사랑봉사단
1975년 중풍으로 쓰러진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골로 들어 올 때, 이순자 씨는 자신이 평생 남을 위해 살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젊은 새댁으로 시골 마을 부녀회에 바로 가입하고 그날부터 시작된 그녀의 봉사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면, 돌이켜 보면 봉사와 함께한 청춘이었다. 그저 부모를 모시듯 어른을 공경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어느새 25년 가까이 되었다. 자신이 만든 반찬을 맛있게 드시는 어르신을 볼 때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말하는 그녀, 어찌 힘들고 외로운 시간들이 없었겠는가만, 마치 꿈을 꾸듯 흘러간 그 세월이 그녀는 감사하기만 하다고 말한다. 주변의 지인들은 그녀를 보며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봉사는 저런 마음으로 해야 하는 거지."
대통령표창
이승환
사무국장
부산광역시 남구자원봉사센터
1997년 부산 수영구자원봉사센터가 개설되던 해였다. 당시 부산시자원봉사센터 소속이었던 이승환 씨는 수영구센터에 파견되어 개설에 필요한 각종 업무를 도맡았다. 1인 관리자로서 회계, 홍보, 프로그램 개발에 사무업무까지 처리해야 했던 그녀는 힘이 부쳤고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자원봉사 코디네이터 교육을 이수했다. 그 후 자원봉사 관리자 자격증을 취득하며 업무를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톨스토이는 "나 자신의 삶은 물론 다른 이의 삶을 삶답게 만들기 위해 끊임 없이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라고 했다. 자신의 잠재력을 찾아 주변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한 길을 가고 있는 이승환 씨는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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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진
사무국장
부천시자원봉사센터
부천시자원봉사센터에 가면 23년째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임순진 씨를 만날 수 있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한 우물을 팠으니 그녀가 이루어낸 경지를 수량으로 나타내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은퇴 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아프고 힘든 사람을 위해 봉사했던 배우 오드리 햅번은 " 한 손은 나 자신을,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것이다."라고 했다. 인생의 반을 자원봉사와 함께한 그녀, 임순진 씨는 자신을 위한 손 마저 세상을 향해 내밀고 있지 않을까. 그녀가 있는 한 부천시는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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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순
회장
샘공봉사회
1988년 부녀회장으로 시작한 단순한 봉사가 이제는 최기순 씨 삶 전반을 차지하는 중요한 일이 되어 버렸다. 대전 동구에 봉사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활동의 중심에 그녀가 있다. 샘골봉사회와 안방마님 최기순 씨가 있는 한, 이곳 샘골에는 소외되는 이욱은 물론, 그 어떤 재난이나 범죄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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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바람 봉사회
풀뿌리자원봉사는 자역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공동체를 위해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지역사회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마음들이 모여 단체를 이루고 참여하는 그 자발성을 존중해, 우리는 그것을 '자원봉사의 꽃'이라고 말한다. 제주에도 그러한 풀뿌리자원봉사단체가 있다. 1999년 5월 청정제주지킴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모여 맑은바람봉사회를 결성했다. 그들은 주거 환경개선 전문봉사단으로, 처음 계획한 일은 맞춤형주거개선사업이었다. 늘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나누고 사랑하는 맑은바람봉사회의 활동은 타의 귀가밍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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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포읍청년회
매화골에는 애향심으로 똘똘 뭉친 50명의 참일꾼이 있다. 매포읍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은 마을의 아들로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로 뛰어다닌다. 애향심을 자칫 소지역주의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매포읍의 아들들은 지역의 발전이 곧 국가의 발전이라는 생각으로 일한다. 전체를 바라보는 대승적인 마인드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그들의 활동은 지역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내고장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그들은 코로나19로 대한민국 국민들이 슬픔에 빠졌을 때 청년회는 희망 꽃화분 500개를 만들어 무력감에 빠진 소상공인들에게 전달하는 아름다운 응원을 하고 돌아왔다. 또 단양군에 방역과 취약계층을 위한 후원금으로 500만 원을 기탁 하기고 했다. 코로나19로 헌혈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헌혈행사에 참여해 70장을 전달하는 등 그들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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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주시자원봉사센터
시민이 주도하는 봉사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도시가 있다. 전주시는 인구의 30%이상이 자원봉사자로 등록되어 있을 만큼 봉사문화가 정착된 도시다. 참여율도 높아 인구수 대비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한다. 시민들은 함께 사랑을 나누면 행복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역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참여해 해결한다. 이러한 봉사문화를 만든 중심에는 전주시자원봉사센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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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심회
힘을 모으고 또 모아 마음을 나누는 협심회는 부산시 북구 중식조리사봉사단이다. 오래전 관내에 있는 중식당 조리사 7명은 IMF로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음식나눔'봉사를 시작했다. 이후 마음을 보태는 분들이 늘어나 1998년 3월부터 시작된 봉사활동은 22년동안 계속되었으며, 90여명의 조리사가 함께 봉사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음식 만드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쉬는 날까지 어려운 분들을 찾아가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얼핏 생각하면, 날마다 하는 일인데 잠깐 가서 하면 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그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중식당은 한 달에 두 번밖에 쉬지 않는다. 그중 하루를 봉사 활동으로 쓰고 나면 피곤은 쌓이고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협심회 회원들은 일하면서도 즐거운 시간이 봉사할 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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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은행
1964년 설립된 중소기업은행은 대한민국 저소득 중소기업 근로자와 소외계층의 복지향상을 위해 지속적인 사회공헌활동을 펼쳐 왔다. 최근 5년간 약25만 8천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활동하고, 1,087억 원이라는 기금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는 중소기업은행은 "IBK 참! 좋은 사랑의 밥차"를 운영하고 있다. 사랑의 밥차는 전국을 돌며 2백만명의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하고 힘이 나는 음식을 무료로 대접하고 있다.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고가 밑에 줄을 선 노숙인들을 본 적이 있다. 역 근처 작은 여유 땅이라도 있는 곳이면 여지 없이 사랑의 밥차가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뿜어 올리면 사람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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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올해는 전례없던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이 발생하면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그 어디도 안전한 곳이 없었다. 이번 재난을 통하여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각 나라의 재난대처 상황이나 국민의식이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우리나라의 발 빠른 대응방식과 선진적 보건 의식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런 중에 자치단체 중 특히, 신속한 대응 체계를 갖춰 선제 방어에 성공하고 있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강원도이다. 강원도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성공개최를 위해 2014년부터 자원봉사운영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자원봉사자 선발, 교육, 배치 등에 만전을 기하였으며, 성공개최의 주인공인 자원봉사자들의 인정보상 활동도 적극 추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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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안전하고, 서로 안부를 묻고,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도시 대구 중구는 전체 인구의 57%가 자원봉사자로 등록되어 있다. 타 구군의 자원봉사센터 상근인원 충족률이 60%~80%인 것에 비해 중구는 120%를 충족하고 있으며, 자원봉사의 메카로 자리 메김하고 있다. 대구 중구는 안부를 묻고 불편한 곳을 찾아 해결하여 모두 함께 잘 살아 보자고 손을 내민다. 자원봉사로 안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중구의 미래는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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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연수구
"공공기관은 공적서비스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국민의 세금으로 제공되는 공공서비스는 재원의 가치에 상응하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 행정서비스의 질을 향상하고 국민의 편익을 높이기 위해 영국에서 제정한 '시민헌장'의 일부다. 우리나라도 1998년 행정서비스가 헌장으로 도입되어 각 정부기관에서 운영하고 있다. 시민헌장에서 명시하는 조항을 준수하며 '더불어 행복한 도시 연수구'를 만들어가고 있는 연수구는 사랑이라는 재화로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다해 봉사하는 자원봉사자들 위해 자원봉사자들의 처우와 고마움을 대답하고 있어 더불어 행복한 도시를 가꾸어 가고 있다.